Chapter 6. 아무도 없는 정원
🌒 1893년, 지베르니
정원의 새벽은 늘 짙은 안개와 침묵으로 시작되었다. 모네는 정해진 시간도, 이유도 없이 이른 아침에 눈을 떴고, 바람이 젖은 창틀을 건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정원으로 나갔다.
연못은 고요했다. 수련은 아직 잠든 듯이 잎만 물 위에 둥둥 떠 있었고, 그 아래의 세계는 보이지 않았다. 물비늘이 햇살을 받아 은색으로 흔들렸고, 안개는 여전히 정원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말을 꺼냈다. “빛은 여전한데, 내가 그 안에 없는 것 같군.”
그 말은 그 자신에게도, 그를 떠나간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여전히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향한 독백이었다.
그의 그림은 더 이상 색채를 담는 행위가 아니라, 기억을 숨기고 감정을 유예하는 공간이 되었다. 수련을 그리고 있지만, 그는 결코 그 수련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위에 떠 있는, 과거의 그림자들을 보고 있었다.
💭 기억은 흐릿하지만, 잊히지 않는다
모네는 자주 꿈을 꾸었다.
카미유가 다시 살아 돌아오기도 하고, 알리스가 그를 뒤로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두 여인이 함께 정원 벤치에 앉아 그를 바라보는 꿈도 있었다. 그는 말을 걸 수 없었고, 그들은 그저 묵묵히 웃기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손에 붓이 쥐어져 있었다. 무의식 중에 새벽에 일어나 그린 그림엔 감정의 잔상이 묻어 있었다. 붓터치 하나, 색의 번짐 하나가 모두 무의식의 고백이었다.
알리스는 눈치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네가 자신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그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 알리스의 일기장
어느 날, 오래된 창고를 정리하던 모네는 알리스가 숨겨놓은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속엔 낡은 책 한 권, 그녀의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처음엔 펴지 않으려 했다. 그녀의 마음을 그림으로는 그릴 수 있어도, 글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책장을 넘겼다.
그는 매일 수련을 그린다. 나는 매일 그가 바라보지 않는 나를 지켜본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도 나를 사랑하는 걸 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늘 어제의 한복판에 머물러 있다.
나는 그에게 오늘이고 싶다. 하지만 그는 과거 속 어제의 빛을 붙잡은 채, 내일을 그리지 않는다.
모네는 일기장을 덮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알리스에게 아무렇지 않게 차를 따라주었고, 그녀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늘 그래왔다. 물어야 할 것을 물으면, 모네는 대답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 그림 속의 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모네는 수련 연작을 그리고 또 그렸다. 같은 연못, 같은 수련, 같은 풍경이지만, 그 안엔 매번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는 자연을 그리는 화가다.”
“그는 빛을 그린다.”
“그는 색의 마법사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림으로 자신의 고백을 남긴다”고.
후기 수련 연작에는 형체가 사라졌다. 색이 흐리고, 수련과 수면의 경계가 무너졌다.
그건 마치 기억의 끝처럼, 희미하고 몽환적인 장면이었다.
그림 안에서, 그는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알 수 있었다. 수련이 떠 있는 저 물 위 어딘가엔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의 흔적이 녹아 있다는 것을.
☕ 마지막 대화
“클로드.”
알리스는 조용히 그의 방에 들어섰다. 모네는 창가에서 그림을 정리하고 있었다.
창밖은 보랏빛으로 저물고 있었고, 수련 연못엔 노을이 번졌다.
“당신, 나를 잊은 적 있나요?”
그녀의 질문은 너무 조용했고, 너무 무거웠다.
모네는 뒤돌아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 속엔 오래된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그는 다가가 그녀의 손을 조용히 감쌌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널 잊지 않기 위해, 그릴 수 없었던 거야.”
알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 대답이면 충분하다는 듯, 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그림자들이 잠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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